언덕 위에서의 유영
《언덕에서의 유영 Swimming on the Hill》은 윤정민(b.1991)의 조각 및 드로잉 그리고 최명헌(b.1996)의 회화가 우리 곁에서 흐르는 일상의 감각을 선과 획으로 포착하는 방식을 살핀다. 전시 명 ‘언덕에서의 유영’은 사진/명화에서 회화로 (최명헌), 드로잉에서 조각으로 (윤정민) 두 팔을 내젓는 최명헌과 윤정민의 작업 프로세스와 관계된다. “나의 지척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힘의 작용”(최명헌)에서 출발하고, 일상적 행위를 드로잉 해 이를 조각의 형태로 제작(윤정민)하는 작품들은 그 일상, 익숙함으로부터 언덕만큼 솟아오른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윤정민의 신작 조각 3점과 최명헌의 신작 회화 4점을 통해 그들이 가장 근래에 유영해온 경로를 확인한다.
윤정민은 자신이 보내는 일상의 순간, 일상의 동세들을 토대로 드로잉을 하고 그 드로잉을 일으켜 세우는 드로잉-조각을 제작한다. 평면에서 입체로 매체가 변환되는 과정에서 평면 드로잉에서는 없었던 ‘공간’이 함께 발생한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드로잉이 조각이 되는 과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1) 색연필, 오일파스텔, 아크릴 물감과 오일스틱 등 세 가지 이상의 재료를 사용해 드로잉을 한다. (2) 드로잉 중 조각으로 제작할 것을 선별한다 (3) 드로잉 속 인물의 몸체를 쪼갠다 (4) 조각 과정에서 쪼갠 몸체들을 다시 하나로 합친다. 이때 ‘공간’은 드로잉 속 선을 표현하기 위해 큰 선 위주로 용접하다가 큰 선을 붙잡는 작은 선들이 생성되는 순간에 발생한다. 윤정민은 그 선들에 한지 죽, 방충망, 레진, 강화 석고와 철판 등을 겹겹이 쌓으며 “살점”을 채워간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신작 <여기!>(2024), <이거 아니야?>(2024)와 <수그린 사람>(2024)에서는 공간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붙어있던 여러 “살점”, “덩어리”들을 최대한 긁어내고, 큰 붓이나 연필로 선을 그릴 때 수반되는 불균질한 터치감을 조각에 담아냈다. <여기!>와 <이거 아니야?> 두 조각은 쭈그리고 앉아 같은 곳을 가리키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두 조각이 나누는 대화를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둥글게 굽은 등허리와 무릎, 뒤꿈치가 살짝 들린 발바닥은 발랄하고 율동적인 선으로 이루어져 조각이 속삭일 대화를 상상하게 한다. 인물의 얼굴 표현 역시 선 사이를 “살점”으로 메우고 그 위에 선으로 이목구비를 그려냈던 이전 작들과는 차이가 있다. 하나의 철판에 눈코입이 오려져 있어 조각 주위의 공기는 눈코입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조각 앞에 서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최명헌은 “몸을 쓸고 지나가는” “눈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감각들을 캔버스 위에 구조화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보도사진과 명화와 같이 자신이 본 다양한 이미지들 속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조형의 상태를 발견하는 과정이 선행된다. 이는 불안정한 감각들을 단순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기 위해 작가가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감각의 구조화를 위해 최명헌은 특히 사진이나 그림 속 신체의 동세나 포즈(pose)에 집중한다. <여울 Rapids>(2024)과 <물가 Waterside>(2024) 두 점은 모두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그림에서 출발한 것이다. 루벤스 그림을 작품에 출발점에 둔 이유 역시 관념이라는 불안정하고 비가시적인 것이 역동적 도상과 배치로 시각화·안정화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물웅덩이 Puddle>(2024)는 군복을 입은 신체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군복을 “주변 환경과 유사한 무늬를 띄며 신체의 견고한 경계를 해체하고 동시에 세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재난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식한다. 강한 힘으로 단단한 선을 그어 쌓은 <여울>과 <물가 Waterside>와 달리 <물웅덩이 Puddle>에서는 유독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녹색 선이 눈에 띈다. <물웅덩이 Puddle>은 어떤 얼굴의 형상을 보여주려 하면서도 얼굴의 사방에서 흐르고 떨어지는 선들로 견고한 형상 만들기를 방해하며 “임시적인 상태”에 머물고자 한다. 작가는 자기 외부에 있는 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궤적에도 관심이 있다. 몸은 정지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운동하므로 이러한 운동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최명헌은 유화물감을 빠르게 건조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갈키드(galkyd) 용액을 물감에 섞어 붓 자국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사방으로 뻗어가는 스트로크들로 이루어진 <깊은 곳 Deep Water>(2024)는 산책이라는 행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작가가 산책할 때 풍경 이곳저곳을 쫓던 동공의 움직임, 지면에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찍히던 발자국이 캔버스 위에 쌓여 출렁인다.
윤정민과 최명헌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마주보고 있다. <이거 아니야?> 속 팔꿈치로 <깊은 곳> 속 물결이 조금씩 들이치고 있다. 갤러리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비탈진 언덕의 끝자락이다. 우리는 언덕을 오르면서 혹은 언덕을 내려가면서 전시를 관람한다. 이곳에서 유영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작품만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