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건너는 방법: Crossing the Surface
기획/ 글. 인가희
'얼굴(face)'은 흔히 이마에서 턱까지, 머리의 앞면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조선시대 초까지는 몸 전체의 '겉모습'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얼굴은 또한 한 사람의 평판을 의미하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정체성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얼굴을 건너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상(像)' 너머의 시선을 담은 김화현, 송지혜, 이샛별의 회화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입니다.
김화현의 〈Foreign Classics〉(2024)는 서구식 미의 기준으로 그려진 한국 순정만화를 보며 자라고,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상 데생으로 입시를 준비한 작가가 자신의 미적 기준과 정체성에 던지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작품의 시작점은 미술대학 입학 무렵 아버지의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리스 미술 도록의 한 도판으로, 청동으로 된 고대 그리스 청년상은 이후 작가에게 무의식적인 미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순지에 분채 기법으로 이 청년상을 묘사하고, 화면 상단에 좌우가 뒤집힌 'Greek Art'라는 글자를 뭉개지듯 표현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청동상의 '겉면'을 미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는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시도입니다.
송지혜의 〈여름〉 시리즈(2024)는 창 너머의 다른 세상을 바라보듯, 화창한 여름날의 하늘과 실내의 밤 풍경이 교차하는 시선을 담은 회화 작품입니다. 2023년 겨울, 작가는 한겨울의 한국을 떠나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가 일 년 내내 이어지는 바레인으로 이주했습니다. 상반된 기후와 낯선 풍경 속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레인의 하늘은 작가에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고,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감춘 채 창밖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레인의 브리티시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이웃을 마주한 작가는 같은 하늘 아래 교차하는 삶의 이야기를 '낮과 밤'의 간극으로 보여줍니다. 〈여름〉 시리즈에서는 12월의 따스한 '여름'으로 묘사되는 낮의 하늘과, 어둠이 내리면 삶의 존재를 드러내듯 조명이 켜지는 밤의 실내 풍경이 서로 교차합니다. 겉으로 고요해 보이는 화면은 같은 하늘빛 아래, 차로 하루면 닿는 전쟁 지역의 긴장감과 안전지대 바레인에서 느끼는 찰나의 평온함 사이를 오가는 극명한 온도 차를 보여줍니다.
이샛별의 〈이모지 휴먼 Emoji Human〉(2024)은 판화지에 오일 페인팅으로 속도감 있게 그려낸 허구적 인물상 시리즈입니다. 스케치하듯 큰 붓 터치로 단시간에 그려진 인물들은 토끼 귀를 지녔으며, 동공 없이 묘사된 두 눈은 한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듯 보입니다. 토끼 귀를 한 인물상은 2009년부터 이샛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해 온 캐릭터화된 소재입니다. 이번 전시의 〈이모지 휴먼〉은 '좋아요', '슬퍼요', '화나요' 등 단순한 감정과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인 '이모지'를 통해 획일화된 인물상을 그려냅니다. 이들은 디지털 세계에 스며들며 사라져 가는 표피적인 인간의 상(像)이자, 사유가 결여된 허상의 이미지를 투영합니다. 〈이모지 휴먼〉은 얼굴을 마주하고 표정을 읽으며 사고를 교류하기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만들어낸 이모지로 소통하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매끄럽고 평평한 디지털 이미지와 달리 "격정적인 붓질"이 남긴 오일 물감의 질감을 화면에 드러냄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의 흔적"을 남기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