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장막: Veil of Ignorance
<무지의 장막>은 보이지 않는 세계, 상상의 세계로 견인하는 단서들이 담긴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다. 지나간 과거와 시작되지 않은 미래 사이 가변의 가능성을 지닌 오늘이라는 시점을 향해 예술의 시간을 빌려 사고하고 질문하며 새로운 시각을 희구하기 바라는 기대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전면에 설치 된 푸른 벨벳 커튼은 안과 밖, 현실과 상상, 과거와 미래를 경계 지으며 하나의 독립 된 세계를 구축하도록 돕는 장치로서 ‘무지의 장막’을 의미한다. 관람객은 내부를 알 수 없도록 가려놓은 공간의 외피, ‘무지의 장막’을 마주한다. 타인과 온전히 동기화 될 수 없는, 타인은 알 수 없는 가려진 각자의 인지영역 속에서 불확실성과 무지, 호기심을 향해 발화되는 상상으로부터 전시는 시작된다. 전시의 타이틀인 ‘무지의 장막’은 영국의 정치 철학자 존 롤스의 개념에서 차용되었다.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은 사회 정의 원칙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마치 장막으로 가려진 듯 서로의 신분과 사회・경제적 지위, 능력, 가치관, 목표 등을 알지 못할 때, 비로서 특별히 누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공정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무지의 장막>에서, 나는 새로워지기 위해 비워 낸 ‘무지’의 상태, 또 그 조건을 가능하게 하는 ‘장막’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성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사회 경제적 지위나 능력, 직업이나 인종, 성별, 나이 등 나를 조건하는 정의들로부터 무지해지는 상태라면 우리는 어떤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무지의 조건으로 ‘순수’를 제안해 본다. 냉엄한 현실에 무지했던 어린 시절의 상상력은 지금보다 탁월했던 듯하다. ‘무용한 정물’ 시리즈는 특히 작고 연약한 것, 사소하고 무용해 보이는 것들 너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상케 한다. 이는 작은 세계를 충분히 애정하고 만족하던 나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지로 인해 편견 없이 세상을 볼 수 있었고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게 친구들과 연대할 수 있었다. 그때 그 순수를 복원한다면 훨씬 많은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는 지금,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빛나는 시간’ 시리즈는 시아노타입 기법을 사용하여 버려지거나 잊혀졌던 작고 소외된 오브제를 빛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이는 순수의 감성이 내 안에 다시 유효해 질 수 있도록 과거의 시간을 재생시킨다. 그렇게 상기 된 과거를 붙들고 알지 못하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눈을 가려도 눈에 선명한 내 안에 빛나는 꿈이나 이상을 묻거나,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숲 앞에서 오지 않은 내일을 향해 어떤 청사진들을 발견 할 것인지 질문한다. ‘무지의 장막’이라는 비일상적 공간 안에서, 과거를 이어 미래로 나아가는 내 안의 질문들 사이, 각자의 상상으로 구축되어질 오늘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인류는 긴 역사를 연결하고 지속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여전히 나아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한다. 빠른 속도와 진보라는 방향에 익숙해진 삶의 관성을 향해 전시 <무지의 장막>은 잠시 제동을 거는 짧은 토막 같은 순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어쩌면, 현실에서 격리된 얇은 커튼 안에서 발터 벤야민이 말처럼 어둠 속에서 다시 태어나거나 생성되어지는 어떤 사고와 시작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오늘이라는 시점은 내일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포괄한 가변적 시점이다. 그 가운데 서서 어떤 생경한 예술의 시간, 무지의 장막을 잠시 스치며, 확실치는 않지만 변화 된 오늘을 마주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
백우진
